샤워젤과 소다수 / 고선경
2024. 6. 23. 16:11
비가 무지하게 내리는 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비도 피할 겸 서점에 갔다.
학생 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고 나보다도 책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
그 계절에 어울리는 책을 그 장소에서 읽는 게 즐겁다고 했다.
여름을 맞아 친구가 구매한 <샤워젤과 소다수>라는 시집.
문학동네가 참 심플한데 감각있게 표지 디자인을 잘 낸다.
<방과후 우리의 발생>. 카페에 가서 목차를 보고 끌리는 시 하나를 펼쳐 같이 읽었다.
요즘 시는 옛날 시와 굉장히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구나.
시 하나하나 완전히 이해가 가진 않지만 분위기를 느끼면서 읽었다.
초록 속에서 우리는 보글보글 끓었다.
한 방울만 튀어도 책장 사이로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기대하며 서로의 귀에 씨앗을 심어주었지 어른이 되면 갚아. 다정하게 속삭였지 그렇게 무럭무럭 우정을 길러냈잖아 푸른 식물을 태울 때 공기는 얼마나 오염될까
우리의 종아리는 수시로 흘러내렸고
땀방울이 죽죽 빗금을 그었지
왜 그렇게 맹렬해야 했을까
졸업이 가까워지자 정원으로 향하는 계단은 저절로 허물어졌다
우리는 식물도감에 적히지 않은 내용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불 없이도 타들어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유리창으로 달려들었다가 시체가 된 것들을 발견했을 뿐인데 반성문을 적어야 했던 일과 우리가 자발적으로 우리가 된 일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포옹도 악수도 없이 헤어졌는데
그것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36쪽, <방과후 우리의 발생>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 혼잣말
밤의 단면은 탱탱하다
구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름
색소를 섞은 비가 내리네
비탈을 따라 토마토는 데굴데굴 구름
빨랫줄만 보면 뭔가를 널고 싶지 구름 젤리 토마토 개구리
물 빠지는 청바지는?
충치 같던 나의 사랑은?
머릿소에 젤라틴을 붓고 식어가는 광경 지켜보고 싶다
도시를 떠난 고민들
나의 우산에는 손잡이가 없다
고장난 젤리 장난감 젤리 뭉개진 젤리
청바지 공장 공장장도 즐겨 먹는
개구리
-51쪽, <토마토 젤리>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 없는 그림책 / 남지은 (0) | 2024.06.25 |
---|---|
인사이드 아웃 2 , 2024 (0) | 2024.06.23 |
하이큐 쓰결 goat하다 (0) | 2024.05.09 |
가슴 뛰는 소설 / 최진영 외 (0) | 2024.03.28 |
파묘, 2024 (0) | 2024.03.04 |